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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제 플러스

2023_1107_[공부왕 이종훈] 프랑스 대혁명은 가발 때문에 일어났다?

by Genesis2 2023. 11. 9.

 

 

손에 잡히는 경제 플러스

 

2023117(화요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내년 한국경제가 완만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1.3%에서 내년엔 2.1%로 서서히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가시화되고 있는 데다, 수출 회복으로 내년엔 기업들의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올해 3.6%에서 내년에는 2.6%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0.5%0.5% 포인트 정도 높다는 전망인데요. 이렇게 경제성장률에 비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경제성장률이란 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대변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이 5% 수준이라면, 많은 기업과 가계의 매출 또한 전년 대비 5% 내외 수준으로 성장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렇게 얻은 추가적인 성과는 신규 투자와 근로자의 추가 임금 상승에 활용되죠.

 

하지만 경제성장률보다 물가 상승률이 높으면, 결국 많은 서민의 실질 임금이 줄어들게 됩니다. 임금이 줄었으니 소비도 줄게 되고, 기업 역시 투자가 위축되겠죠. 그러면 고용도 줍니다. 이래서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현재 우리나라는 경기 침체기가 맞는다고 언급했나 봅니다.

 

 

[공부왕 이종훈] 프랑스 대혁명은 가발 때문에 일어났다?

 

- : 예전에 어렸을 때 타 방송사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거 기억나십니까?

 

- : , 거기 몇 번 출연했었어요.

 

- : 그러셨어요? 예 그건 또 몰랐네요. 오늘은 또 어떤 분의 질의를 해결해 주실 건가요?

 

- : 오늘은 휴대전화 뒷번호 777 쓰시는 분께서 보내주신 공부건인데요. 편의상 777님이라고 부를게요. 잠깐 777님께서 보내주신 문자 소개해 드리면, 앞머리가 횅해지는 게 제 마음대로 횅해집니다. 탈모약도 알아보고 있지만,

 

가발 하나 사서 써야 하나 고민이에요. 요즘은 티가 나는 듯 나지 않은 가발도 많다던데, 그나저나 작가님 가발은 대체 언제부터 썼나요?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저 대신 공부 좀 해주세요!라고! 문의하셨습니다.

 

- : 그렇네요. 사실 의학계에서는 이 세 가지만 발명을 잘해도, 진짜 의학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부의 판도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하나가 탈모였거든요.

 

- : 탈모약은 사실 주식시장에서도

 

- : 그렇죠.

 

- : 소재거리 맞아요.

 

- : , 그러면 탈모약 개발하기 전에 임시방편으로 쓰는 가발. 가발이군요.

 

- : 그런데 사실 가발에는 인류 문명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한국경제와 대한민국 산업을 이야기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777님의 질문은 우리 손경제 플러스와 같은 경제 프로그램에 아주 딱 맞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공부 거리를 보내주실 때,

 

어떤 분들이 이런 거 경제 풀이 묻기 좀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궁금증이 곧 경제입니다. 거리낌 없이 주저하지 마시고 보내주시면 제가 대신 공부해 드리겠고요. 777님의 이 가발 역시 공부할 내용이 제법 많았어요. 그래서 777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이번 주와,

 

다음 주 두 번에 걸쳐서 대답해 드려야 될 것 같은데. 가발을 소재로 2회에 걸쳐서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오늘은 777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가발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다음 주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산업이자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토대와 초석을 마련해 준 가발 산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그러면 우리 시작해야죠.. 가발은 대체 언제부터 쓴 겁니까?

 

- :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류가 가발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기원전 6천 년 전으로 올라갔습니다.

 

- : 생각보다 굉장히 기네요?

 

- : 그리고 인류가 본격적으로 가발을 쓰기 시작한 건, 기원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음 시간에 우리나라의 가발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가발과 관련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게 삼국사기 고구려가 일찍부터 가발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튼 기원전 6천 년경,, 칠레 지역에 살던 친초로라는 부족이 있었는데, 이 부족의 미라에서 가발과 가면을 씌운 흔적이 발견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좀 유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가발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기원전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를 가발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많이 거론하고 있는데. 고대 이집트 같은 경우는 노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발을 썼던, 정말 가발의 시대, 가발의 나라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벽화나 조각품들 보신 적 있죠?

 

- : 예 그럼요.

 

- : 거기 보면 남녀 모두 단발머리 스타일 하고 있죠?

 

- : 맞아요.

 

- : 그게 다 가발이에요.

 

- : 그래요?

 

- : 황금으로 만든 투탕카멘, 황금 가면 보석,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의 머리 스타일도 가발이에요. 가발을 벗고 나서 만든 마스크예요. 고대 이집트인들 같은 경우는, 노예와 하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머리를 삭발해야 했어요.

 

- : 왜요?

 

- : 노예와 하인은 법으로 금지됐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다 삭발하도록 했는데. 그 이유가 깨끗한 물이 부족하고, 샴푸가 없던 시절이잖아요.

 

- : 위생 때문에

 

- : 위생과 청결 때문인데 머리를 잘 감추지 못하니까 머릿니, 그리고 악취가 정말 심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여기에 고대 이집트인들을 비롯한 세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중세 시대 사람들까지 모든 병의 원인을 나쁜 냄새 악취로 봤어요. 그런데 나일강의 풍토병에 고대인들이 많이 시달렸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이 이 악취가 나는 머리카락과, 혈에서 난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자신들을 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과 몸의 털을 없애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밀어버리는 삭발은, 머릿니와 머리카락 냄새, 악취 등의 문제들을 한 번에 다 해결할 수 있는 요소가 됐죠.

 

- : 여성도 다 삭발?

 

- : 여성들도 다 가발이에요. 클레오파트라도 가발이에요.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 같은 경우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삭발하고 머리를 면도했는데. 문제는 이집트의 날씨, 뜨거운 태양이었습니다. 머리를 삭발한 채로 다니면, 두피에 정말 강력하게 내리쬐거든요. 따라서 모든 이집트를 입장에서는, 태양 빛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무언가가 바로 가발입니다.

 

- :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가발이라는 게, 어찌 보면 지금의 모자의 기능이군요?

 

- : 우리가 흔히 가발을, 탈모를 감추기 위해 탄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가발은 태양 빛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하는 모자의 개념, 혹은 장식의 개념으로 치장과 장식의 개념으로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고요. 또 고대 이집트 유물 중, 단발머리 모양의 가발이 많은 이유 역시 오늘날의 모자와 같은 이유입니다.

 

모자 좀 더 가벼울 필요가 있겠죠? 그 가발도 좀 더 가벼운 무게가 필요했고, 또 머리와 가발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서, 열이 빠져나가고 바람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발머리 형태가 가장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공간이 생기고 단발머리 형태가 되면 또 가볍고.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 같은 경우에는 가발이 필수품이었고. 거의 모든 이집트인이 최소 집에 2개에서 3개 이상의 가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 그렇겠네요. 모자 같으니까 한 2~3개 있어야 갈아 끼고.

 

- : 태양 빛이 뜨거운 나라니까, 보호 장치가 필요한 거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발을 쓰기 시작하자, 필수품이 곧 신분과 부를 구분 짓는 도구로 변질하기 시작합니다. 권력자들과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썼는데.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볍잖아요?

 

그리고 무게가 가벼워서, 단발이 아닌, 좀 더 긴 머리 스타일, 긴 머리 형태의 가발을 착용할 수 있었고. 화려한 장식과 치장을 달 수 있었어요. 반면에 서민들은 양털로 만든 가발이나, 아니면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가발을 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무겁고, 불편하여서 짧은 단발 형태의 가발을 주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집트 가발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 가발의 모양과 길이, 형태는 곧 권력과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과 상징이 됐고요. 고대 이집트 벽화를 자세히 보시면, 권력자들의 가발 길이가 다른 인물들보다 길어요. 가발 머리카락의 길이가 좀 더 길고. 또 권력자들이 좀 더 크게 그려져 있어요. 큰 사람으로

 

- : 그런 특성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어찌 보면 지금은 탈모를 좀 감추기 위해서 가발을 쓰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이런 형태의 가발 사용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로마 제국 때 로마예요. 탈모를 감추기 위해서 가발을 쓰기 시작한 건 로마 시대부터인데 이집트 원정을 다녀온 시져, 카이사르 등 탈모가 있던 로마의 귀족들. 카이사르 시져가 탈모 때문에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사람이거든요. 유명인 중에 탈모인들이 상당히 많아요.

 

- : 제가 아는 유명인은 딱 한 사람밖에 없어요.

 

- : 누구죠?

 

- : 율 브리너.

 

- : 카이사르를 비롯한 로마 귀족들이 이집트에서 가발을 보고 유레카를 외칩니다. 저거다! 저걸 쓰면 나의 탈모의 고민이 해결되겠다. 탈모를 감출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남성들이 탈모를 감출 목적으로, 로마 시대에는 가발을 많이 착용했고.

 

그러다 보니까 고대 이집트인들의 가발처럼 길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특별한 치장이 필요 없었어요. 하지만 이 가발은 당시에 로마 시대에 귀족들과 장군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천 년 동안 유럽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 : 갑자기 가발이 왜 사라지죠?

 

- : 교회와 가톨릭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가 망하고 나서 교회의 시대가 오잖아요? 이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교회의 가톨릭이 가발 착용을 금지했는데. 중세 시대 교회는 가발을, 신의 은혜를 막는 악마의 도구라고 봐요. 그러니까 성직자들이 세배를 줄 때 머리에 물을 뿌리거나 가발에다 뿌릴 수는 없다는 거예요.

 

이건 신의 은혜를 가로막는다는 거죠. 그리고 또 가발 착용을, 간음보다 더 큰 죄로 간주했고, 심지어 중세 시대 교회 같은 경우는 성직자들이, 탈모에 대해서도 죄가 많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되는 형벌이라고 했기 때문에, 탈모를 감춰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 : 그렇군요. 저는 유럽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발 문화가 계속 이어져 온 줄 알았거든요. 왜냐하면 유럽의 법정을 보면. 판사나 이런 분들이 흰색으로 된 긴 가발 같은 걸 쓰고

 

- : 지금도 씁니다.

 

- : 그러니까요. 그걸 계속 쓰고 집행관 역할을 하다 보니까, 저건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이렇게 완벽하게 금지한 시절도 있었군요?

 

- : 1,000년 동안 금지됐었습니다.

 

- : 그러면, 언제부터 유럽인들은 다시 가발 쓴 거예요?

 

- : 르네상스 시대,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유럽에서 가발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르네상스 시대 특징은,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시대잖아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가발이 다시 유럽에서 부활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매독 때문이에요.

 

- : 매독하고 또 가발은 무슨 관계인가요?

 

- : 매독에 걸리면 증상이 피부 발진이나 탈모가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 사람들은 풍성한 머리카락과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굉장히 부러워했습니다. 매독이 전 유럽을 휩쓸었기 때문에. 그리고 풍성한 머리카락과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건강과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졌어요.

 

당연히 그 나라 최고 부자이자 최고 권력자가 누굽니까? 왕이잖아요? 왕은 더 풍성하고 더 긴 머리카락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루이 13세나 루이 14세 가서 프랑스 왕들의 초상화를 보면, 굉장히 컬이 많이 들어가고, 더 긴 머리를 사용하는, 다 가발이거든요.

 

그런데 또 이 시대 사람들은, 머리가 큰 사람을 선호했어요. 남성들의 경우 머리가 크고, 머리카락이 풍성하면 똑똑하다, 지성미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남성미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붙었다고 합니다. 머리가 크고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은, 지적인 사람 지식인으로 여겨지다 보니까,

 

말씀하셨던 판사들, 지식인과 학자들, 또 판사 같은 법조인들이 길고 털이 많이 들어간 가발을 쓰는 것이, 여기서부터 유래가 된 거예요. 당연히 어쨌든 왕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적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을 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탈모를 앓고 있는 왕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잖아요?

 

- : 그렇죠.

 

- : 그리고 또 유럽의 왕들도 정서에서는 감추고 있지만. 야사나 이런 데서 보면, 매독에 시달렸다는 왕들이 상당히 많단 말에게 요.. 그런데 어쨌든 자신들이 탈모를 경험하고 있는데, 풍성한 머리카락이 필요해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소가 뭘까? 바로 가발이죠. 그래서 가발이 다시 유럽 역사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는데.

 

17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왕족들과 귀족들은 털이 잔뜩 들어가고, 풍성하고 긴 가발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발의 유행을 선도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13세와 루이 14. 태양왕 루이 14세까지 이 두 사람이 선도했다고 하는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20, 30대부터 머리가 빠지는 탈모입니다.

 

탈모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가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열렬한 애호가, 그리고 찬양을 아끼지 않는, 가발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이었던 사람들이에요. 루이 14세 같은 경우, 왕실과 궁정의 궁궐에 왕의 가발만을 만드는 전속 가발 장인들을 48명을 따로 고용해서,

 

밤낮으로 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한 가발을 만들게 시켰어요. 그래서 왕은 루이 14세 같은 경우, 하루에도 서너 번, 많게는 10번 이상 가발을 바꿔 쓰고 공식 석상에 나섰다고 하는데. 왕이 이렇게 가발을 좋아하고 진심을 보이니까, 밑에 신하들과 귀족들은 어떻겠어요?

 

- : 다 가발 써야죠.

 

 

가발

 

- : 그리고 왕에게, 자기 가발 자랑도 하고, 아부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그래서 프랑스 공전에는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가발을 쓴 귀족들이 가득했던 거죠. 그러자 프랑스에서 가발 패션이 유행하니까, 다른 나라 왕족들과 귀족들도 저거 괜찮아 보이는데? 우리도 따라 하자라고 해서,

 

가발은 전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요. 심지어 영국에서는 남자들이 성년식을 할 때,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발을 쓰는 의식을, 성년식 일부로, 꼭 해야 하는 행사 의식으로 치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너도나도 가발을 착용하고 가발이 유용하게 되니까. 고대 이집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발이 이제는 다시 부와 권력,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기 시작했는데요. 18세기가 되면서 유럽의 귀족들은 철심을 박아서 가발의 높이와 길이를 마치 올림픽처럼 더 높이, 더 멀리 쌓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 : 일종의 가발을 철골 구조물 위에 얹어서?

 

- : 그렇죠.

 

- : 더 높이 보이게 하는 것이군요.

 

- : 여성들의 가발 높이가 3m가 넘는 게 있다고, 심지어 삽화를 보면, 여성 귀부인이 이렇게 걸어가는데, 뒤에서 하인들이 작대기 같은 걸로 가발을 바치면서 따라가요. 그런 삽화가 있고. 또 한 삽화는, 이게 실환가 싶은데, 새 둥지를 형상화한 가발이에요. 그런데 그 안에 진짜 새 장가 새가 들어 있어요. 어쨌든 이런 경쟁을 하다 보니까.

 

- : 이러면 사고 날 것 같은데요?

 

- : 사고 나죠. 목뼈가 부러져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사실 이런 분들 조선시대에도 있었어요.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모가 쓴 청장관전서라는 책을 보면. 부잣집 며느리가 높이 쌓은 가체와 다리를 머리에 하고 있다, 갑자기 일어서다 보니,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참 슬프다.

 

- : 이 가체가 가발인 거잖아요??

 

- : 그렇죠. 아무튼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서인지, 18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가발은 높이 경쟁을 끝냅니다. 대신에 색깔 경쟁을 하게 됩니다. 색깔 경쟁은 흰색인데요. 당시 사람들은 흰색을 순백의 상징인 동시에, 권위와 지성을 상징한다고 배웠습니다.

 

순별을 상징하고 권위와 지성을 상징하니까 남녀 모두, 가발을 더 하얗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거죠. 그런데 이 가발을 더 하얗게 만드는 경쟁이 벌어지면서, 가발은 프랑스 대혁명과 세금을 초래했고, 또 가발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 : 오늘 정말 새로운 걸 많이 하네요. 가발이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했어요?

 

- : .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발에 뿌리는 파우더와, 그 파우더를 뿌리는 방법에 따른 파우더룸이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 됐는데. 오늘날 여성들이 화장하거나, 고치는 방을 파우더룸이라고 하잖아요.?

 

- : 그렇죠.

 

- : 그 파우더룸이 여기서 비롯된 겁니다. 당시에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은 가발을 흰색으로 만들려고 외출 전에 파우더를 가발에 듬뿍 뿌렸는데, 이 파우더가 밀가루에, 그리고 오렌지와 라벤더를 갈아 만든 거예요. 가발에 안 좋은 냄새를 없애고 흰색을 만들기 위해서. 당시 가발이 짧은 게 요즘 값으로 수백만 원.

 

긴 거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이 넘는다고 하고요. 그런데 서민 처지에서 보면, 안 그래도 가발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여기에 서민들이 밀가루가 없어서 굶주리고 있던 시대란 말에요. 그런데 기업들은 그 시장 밀가루를 가발에 씻어 때도 없이 뿌려대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파도 만든다고 밀가루를 다 사들여서,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으니까, 민중의 분노와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성난 민중들은 가발, 즉 가발을 쓴 귀족들을 분노의 대상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겁에 질린 귀족들은 너도, 나도 가발을 집어던져 버리죠. 그리고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가발이 이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가발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